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의 문제 (문단 편집) ===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 >(중략)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내재하는 '악'의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웠었다. "왜 신은 만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과 천사가 그 자유를 악 때문에 남용함을 막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노는, 악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선'한 것으로서 만들어진 의지가 자신의 놓여 있는 질서에 배반할 때에만 악이 존재한다는 것, 이 의지의 반역 즉 '죄'를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그 악에 대하여 당연한 벌을 받게 되며, 이리하여 악도 신의 섭리 안에 들어 있음을 밝혔다. 성서 가운데에는 신의 전능과 악의 존재에 관한 논리적인 해석이 제공되어 있지 않으므로, 근대에 와서 여러 각도에서의 신학적인 주장이 펼쳐졌다. >(중략) >여기서 특히 가톨릭에서 해석하고 있는 '악'이라는 용어를, evil과 wrong의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① evil : 당연히 있어야 할 선, 자연히 본질적으로 속해 있어야 될 '''선의 결여'''를 '악'(evil)이라 한다. 즉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어떤 존재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이 경우의 '악'으로 본다. > ② wrong : 바르지 않은 것, 틀린 것을 이 경우의 '악'(wrong)이라고 말한다. 인간 행위에 적용하였을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 인간의 최종 목적인 천국에 다다르는 길에서 벗어남을 지칭한다. ①②가 마찬가지로 '악'의 의미로 쓰이지만, 엄격히 말해서, 'wrong'은 '진리'에 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evil'은 '선'에 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 >가톨릭 대사전, <악> 항목 中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러한 주장[* 자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저술에서 말하는 ‘악(惡)의 문제’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악’의 문제는 소크라테스 이후 그리스와 로마 정치철학자들이 이해하던 ‘이성’과 ‘감정’의 불균형이 초래한 퇴행이 아니었다. 그에게 ‘악’은 선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택하려는 ‘의지’(voluntas)의 산물이며, 인간은 신의 은총이 없이는 이러한 의지를 유발하는 욕구를 거부하고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즉 그에게는 ‘악’이란 감정에 압도당한 이성이나 무절제한 삶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본원적 무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본 것이다. …(중략)…한편으로는 신이 창조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과 무관하다는 신학적 정당화,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 속의 개인이 아니라 신과의 일대 일의 관계를 갖는 개인이 부각되는 계기를 효과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출처: 곽준혁, “정치철학 다시보기아우구스티누스왜 로마는 야만족에게 붕괴되었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10185&cid=51609&categoryId=51609|링크]], 접속일 : 2023.11.16]을 했으며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악은 선의 부재(nicht gut)로 보았다. "선은 옷이고, 악은 옷에 생긴 구멍이다."와 같은 비유를 통해 선과 악의 관계를 설명하려 하는 경우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가톨릭의 자세한 교리를 보고 싶다면, [[악의 문제/가톨릭]] 문서를 참조하자. 악은 사실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선이 결핍된 상황을 뜻할 뿐이라는 것. 즉, '''악은 선의 결여(privatio boni)'''라는 주장.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명사를 부여해서 그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가령 어두운 방에 대해 '어둡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보자. 이 때 어둠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취급되지만 사실 어둠이란 대강 말해 빛의 유무에 따른 현상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악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악'이라고 호칭하기 때문에 악이 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악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선이 결핍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어둡다. 이는 '어둠'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빛이 거기에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는 검정색과 추위 등도 동일하다. 가톨릭에선 이것이 '인간이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교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닌, '선의 결핍', '창조된 것의 결핍',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되기에, 인간이 초월자로부터 나온 '선'을 따라야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악은 선의 '결핍적 부재'이지 '부정적 부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악이란 '있어 마땅한 것'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톨릭에서조차 "있어 마땅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는 그것이 뭔지 모른다"는 입장이다. 가령 아이가 물에 빠졌고 길가에 쓰레기가 떨어져있다면 쓰레기를 줍느라고 아이를 늦게 구하는 것은 (아이를 구하는 일이 훨씬 더 긴급하므로) 악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특수한 상황이다. 우리는 쓰레기를 줍는 행위가 어떠한 악덕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이 주장은 결국 '자유의지'와 거의 똑같은 비판을 받게 된다. 즉 신이 인간에게 허락해준 자유의지로, 인간이 '선이 결여된 언행'을 하여서 타락하게 되는데 왜 신이 이것을 바로잡아 주지 않느냐는 점이다. 세부적인 비판은 자유의지와 거의 겹친다. 악마끼리 싸우기 때문에 악이 악이라고 정의해도, 인간의 원죄를 가지고 와도 문제. 애당초 선으로 충만한 세계라면, 악마가 있을 이유도, 원죄가 있을 이유도 없다. 또한 악을 선의 결여로 표현하면서 사용한 비유들은 그대로 선을 악의 결여로 표현하는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수많은 역사를 통해 선의 기준에 어느 정도 공통된 요소가 존재한다고 반론하는 경우가 있는데, 똑같은 이야기는 악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악 역시도 역사를 통해 어느 정도 공통된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 어느 쪽으로 결정하기 힘든 문제들에 대해서는 결핍적 부재, 부정적 부재라는 모호한 말로 분리해서 넘어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악이 명확하게 존재해서가 아니라 선 역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같은 문제를 보자. 결핍적 부재에 해당하는 사례지만, 그렇다고 그게 악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다같이 빠져 죽는 것이 '있어 마땅한 것'일까? 이에 대해 가톨릭에선 그것도 악이고 소죄라는 식으로 넘어가지만, 냉정히 보면 악의 문제에 대한 답이 못 된다. 그냥 신이 그런 상황에서 구해주거나 애초에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악의 문제에 다시 걸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신에게서 멀어지면 그게 악이다'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악의 실재성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악의 문제를 무효화하려는 논리이다. 그러나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처음 물음이 "왜 선의 결핍이 존재하는가"로 표현만 바뀔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여의 원인이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말하면 앞선 자유의지 문제로 되돌아가는 것밖에 안되고, 여러 자연적 악이나 우연적인 악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의 문제도 그대로 남는다. 게다가 선이 신으로부터 온다는 부분에 이르면, 신과 관련을 맺지 않는 세속윤리(secular ethics)는 불가능한가?([[도덕과 종교의 관계]])라는 의문과 반박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 논리대로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에는 세상이 온통 악의 구렁텅이였어야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 주장은 일반적인 직관에도 심각하게 반하는데, '''선은 아니지만(선의 결여이지만) 악도 아닌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해당 주장은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흑백논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다리 떨기]] 같은 행위는 일반적인 사회 인식상 선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다리 떨기는 선의 결여이므로 악이라 보아야 할 것이나, 실제로 다리 떨기를 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